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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인터뷰 전문

5/13(월)[초대석]“1965년 한일협정, 한 일 해석 달라”시사자키| 2019-05-13 17:52:10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 1 (18:10~19:50)
■ 방송일 : 2019년 5월 13일 (월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 연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 교수)




◇ 정관용> 한일관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 9일자 한 일본 신문의 보도내용이에요. 강제징용 판결, 초계기 갈등, 위안부 문제. 참 여러 가지가 겹쳐서 지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죠. 이런 한일관계의 경색상황을 풀기 위해서는 1965년 한일협정부터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역사 화해가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하신 분이 있어서 오늘 스튜디에 직접 모셨습니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의 남기정 교수 나오셨어요. 어서 오십시오.

◆ 남기정> 안녕하세요.

◇ 정관용>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최악 맞습니까?

◆ 남기정>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일관계는 늘 부침이 있기는 있었습니다. 갈등과 협력이 동시에 일어나는 독특한 구조가 한일관계의 특징인데요. 안보나 경제면에서도 협력하다가도 과거사 문제가 돌출되면 악화하는 구조가 있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 남기정> 그래도 그 한일관계는 과거에는 안보와 경제면에서 실리라고 하는 게 한일관계 악화의 한계선을 긋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그런데 지금은 좀 그런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 한일관계에서는 안보와 경제면에서 직접적인 이익을 공유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도 파악이 되는 면이 있고요. 양국의 최고지도자들이 이 상황을 개선시키려는 의지가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 현실. 이런 것도 한일관계 악화를 그대로 방치하는 그런 상황이 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양국 단독 정상회담이 마지막 열린 게 언제입니까?

◆ 남기정> 2011년 12월달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시에 노다 총리가 교토에서 만난 이후로 한 번 두고 이른바 단독정상회담이라고 하는 건 열리지 않았습니다.

◇ 정관용> 2011년이 마지막이에요?

◆ 남기정> 그렇습니다.

◇ 정관용> 8년 됐네요.

◆ 남기정> 그렇죠. 2012년에 여름에 한일관계가 굉장히 나빠진 이후로 아직까지 정상회담으로 한일관계를 개선시키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 정관용> 2012년 여름에 어떤 일이 있었죠?

◆ 남기정> 2012년 여름에 이명박 대통령께서 독도를 방문한 일이 있었고 천왕 관련 발언이 있어서 일본 쪽에서 굉장히 한일관계에 대해서 어렵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던 상황이 2012년 여름이었죠.

◇ 정관용>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 보자면 특히 아베 정부가 계속 우경화, 우경화하고 식민지배 전혀 인정도 안 하고 위안부 문제도 그렇고. 근로정신대 문제도 그렇고 우리는 너무 그냥 정당한 일들을 진행하고 있는데 일본 아무것도 인정 안 하고 우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요?

◆ 남기정> 글쎄요. 그게 작년에 이제 일어났던 일들은 1965년 체제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동안에는 그러한 일들이 있어 와도 65년 체제 안에서 봉합이라고도 할 수 있고 부분적인 개선이라든지 부분적인 대응 같은 걸 하면서 지금까지 진행해 왔는데 작년에 일어났던 일은 이제 65년 체제의 바깥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으로서는 이 65년 체제 안에서 문제를 풀자. 이 65년 체제를 지키자라고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거고 우리들은 이미 제기된 문제는 이제 그 안에서는 풀 수가 없다라는 입장에 서 있어서 이 두 입장이 지금 뭐랄까요.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인식의 차이를 그대로 노정하고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관용> 바로 핵심으로 들어가는 건데 지금 교수님 설명을 청취자분들 정확히 잘 이해를 못하고 있어요. 65년 체제란 뭘 말하는 거고 그 체제 내에서 풀자는 것과 바깥에서 풀자는 것이 뭘 말하는 건지 하나하나 좀. 먼저 65년 체제라는 건 뭐죠?

◆ 남기정> 65년 체제라고 하는 것은 1965년도에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과정에서 맺어지게 된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구조들을 말합니다.

◇ 정관용> 한일협정.

◆ 남기정> 한일협정이라고도 하고 한일 기본조약이라고도 우리가 얘기하는 체제죠. 그러니까 한일 기본조약과 거기에 따른 협정들인데요.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건 기본조약과 이른바 청구권 협정이라고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에서 이제 명확하게 과거사문제를 정리하지 못한 것이 1965년 체제의 한계였는데 지금까지는 이제 그런 상황에서도 양국이 서로 인식을 달리 하는 상황에서도 서로 국론을 조절하면서 적당히 이 문제를 갖다가 처리해 왔다는 게 지금 현실입니다.

◇ 정관용>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일본은 계속 거듭해서 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서 모든 일본의 배상책임은 다 그걸로 끝났다. 그러니 추가적인 배상책임 요구 이런 건 절대로 안 된다, 일본이 이렇게 주장하는 거 아닙니까? 일본이 그렇게 주장할 근거가 있어요?

◆ 남기정> 여기서 또 배상과 청구권의 문제로 좀 구분을 해서 봐야 되는데요. 배상 문제는 사실은 한일기본조약에서 배상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걸로 문제가 끝나버렸습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1910년까지 이르는 1904년 또는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이르는 협약이나 조약. 한국과 당시 대한제국이죠. 대한제국과 일본이 맺은 여러 가지 조약들이 이게 무효가 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확인한 것이 기본조약인데. 이 무효가 되었다라고 하는 시점이 애매하게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이미 무효다라고 하는 말로 문장으로서는 확인이 되었는데.

◇ 정관용> 이미 무효다.

◆ 남기정>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 이미라고 하는 시점을 협약과 조약이 맺어진 그 시점부터, 즉 원천적으로 무효다라고 하는 입장을 관철시키려고 했고.

◇ 정관용> 한일합방 그 자체부터 무효다.

◆ 남기정> 그렇죠. 일본은 일단 유효하게 합의에 의해서 성립이 되었고 유효하게 존속하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게 무효가 되었다 이런 입장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의 중요성은 뭐냐 하면 이게 배상에 해당하는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전쟁배상이건 식민지배상이건 이게 배상으로 성립하려면 이 조약의 성립 그 자체가 원천적으로 무효였다. 그래서 불법적인 상황이 지속되었다라고 하는 걸 확인을 해야 합니다.

◇ 정관용> 그게 우리 입장인데.

◆ 남기정> 그렇죠. 우리 입장이죠.

◇ 정관용> 그런데 일본은 1910년 한일합방은 물론 강제적으로 된 거기는 하나 합법적으로 조약을 맺은 것이니 그런 주장이군요.

◆ 남기정> 그동안에는 강제적이라고 하는 것 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오래 지속돼왔었죠. 그런데 이러한 큰 틀 안에서 청구권 협정이 맺어지는 바람에 청구권 협정도 굉장히 애매하게 처리가 되었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됐죠?

◆ 남기정> 그러니까 이건 정확하게 말하면 청구권 및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인데요, 사실은. 그런데 청구권의 내용에 대해서 두 가지로 협정은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 1항의 내용은 뭐냐 하면 유무상 5억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제공된다라고 하는 사실이 적혀 있고 그 2항에는 이로써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을 확인한다라고 하는 내용이 2항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항과 2항의 내용이 서로 어떤 연관을 갖는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과 일본이 서로 해석을 달리 하고 있는 겁니다.

◇ 정관용> 어떻게요?

◆ 남기정> 일본은 애초부터 청구권이라고 하는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신생 한국의 독립 축하를 하는 의미에서 경제협력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금전적으로 지원을 하는 것이고 이것으로서 그동안에 한국이 주장해 왔던 청구권 존재라는 것은 없는 것이 확인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일본의 입장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청구권 협정이라고 하는 것을 정정당당하게 요구를 했고 그것을 받았다라고 국민들에게 설명을 했고. 당시에 한일협정 반대의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정부로서는 이걸 명확하게 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받을 것을 받았다. 그럼으로써 청구권 협정이 이루어졌고 거기에서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었다라고 하는 게 한국 정부의 입장인 겁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서로 약간 꼬인 관계였죠, 오히려. 이 문제 해석은. 어쨌거나 그래서 여기에서 이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고 서로 엇갈린 해석을 하면서 지금까지 쭉 왔던 게 1965년 체제의 본질이었고 작년도에 나왔던 그 대법원 판결은 이 문제를 정면에서 건드리는 것이었죠.

◇ 정관용> 그렇죠. 모든 청구권이 끝난 게 아니다.

◆ 남기정> 아니다.

◇ 정관용> 개인이 청구해서 개인이 청구하면 개별 기업한테 받을 수 있다 이렇게 법적 판단을 내린 거잖아요.

◆ 남기정> 그런데 그것도 청구권 협정의 바깥에서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즉 일본의 식민지 지배 그 자체가 불법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불법적인 상황에서 이에 협조하는 기업들이 저지른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 식으로 일본에게 그 책임을 씌운 겁니다, 일본 기업들에게. 그러니까 이건 청구권 협정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를 그 바깥에서 문제를 제기했다라는 의미이고. 그런 의미에서는 1965년 시대 그 자체를 지금 문제삼는 그러한 상황이 되었다라고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인 것이죠.

◇ 정관용> 맞아요. 그렇다면 그래서 교수님께서는 65년 그 협정을 다시 해석하는 역사화해가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하셨어요. 다시 해석한다는 게 뭡니까? 물론 우리 정치권 일각이나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아예 일본하고 청구권 협상 다시 하자. 한일협정 다시 체결하자라는 주장도 물론 있습니다. 그것까지 존재해 놓고 교수님께서는 다시 맺자는 것은 아니고 해석을 다시 하자.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 남기정> 그러니까 일본에 대해서 약간 비관주의를 저는 극복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그러려면 한일 양국이 그 이후에 해 왔던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65년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식민지 지배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버텼던 역사가 있는 반면 1965년 이후에 지금까지 일본이 서서히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의 역사인식이 점진적으로 발전이 되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일본이 그동안에 이른바 도외적이고 정치적인 수식어가 붙기는 했지만 그 책임을 지려고 했던 노력들이 뒤에 뒤따랐다라는 것이죠. 그런데 물론 일본의 이러한 태도변화를 촉구했던 것은 우리 한국 정부였고 한국 정부가 그러한 움직임을 하도록 뒷에서 밀었던 건 우리 시민사회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민주화된 이후에 우리 성장한 시민사회의 역량을 통해서 우리 정부를 움직이게 만들었고 그런 우리의 정부의 일본에 대한 요구가 일본의 태도변화를 갖다가 낳았고 그걸 65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는 노력으로 어느 정도 현실화되었다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 정관용> 아베 정권은 그렇지 않습니다마는 과거 정권에서 일본이 책임 좀 인정하고 사죄도 하고 이런 몇 번의 발언들도 있고 했었지 않습니까? 지금 그걸 말씀하시는 거죠?

◆ 남기정> 그렇습니다. 그건 일본 정부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아베 총리라 하더라도 그 자체를 갖다가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그러한 일본의 정부의 입장이 유지되고 있는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이러한 일본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던 그 물꼬를 튼 건 아무래도 위안부 문제였는데. 위안부 문제를 제기를 하면서 그 해결을 요구를 하는 그러한 한국 국민의 목소리,한국 정부의 요구에 따라서 나온 것이 93년도, 1993년도 고노담화였고. 그것을 조금 더 확대해서 식민지 지배 전체의 문제로 이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95년도의 무라야마담화였습니다. 그렇다면 무라야마담화에는 일반적인 식민지 지배를 인정했지만 한국 국민에 대한 식민지 지배를 갖다가 인정하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처음으로 인정했던 것은 1998년도에 한일 공동선언.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 사이에 있었던 한일 공동선언에서 처음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 국민에 대한 식민지 지배책임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의 뜻을 표명을 했습니다. 이게 처음이었죠. 그런 다음에 이제 이 이러한 인식이 2002년도에 북일공동선언에서도 반영이 되었고요. 그런데 여기까지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책임을 인정한다. 그로부터 한국 국민에게 또는 조선인민에게 끼쳤던 다대한 고통, 손해를 인정했다라고 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1910년도 이른바 한일합방조약, 한일병합조약이라는 것에 기인하고 그것이 강제적이었다라고 하는 인식까지는 나아가기는 어려웠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그런데 이러한 인식이 처음으로 표명된 것이 2010년도 간 나오또 담화입니다. 간 나오토 담화에서는 식민지 지배의 이러한 문제들이 1910년도에 체결된 한일병합조약이 있고 이 조약 그 자체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마는 식민지 지배가 한국 국민의 의사에 반해서라고 하는 풀어쓴 용어입니다마는 그런 식민지 지배가 강제적으로 실시되었다라고 하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겁니다.

◇ 정관용> 2010년.

◆ 남기정> 2010년도 간 나오토 담화죠.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러한 역사인식의 발전이라고 하는 것을 부인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기원에 있었던 1993년도 고노담화를 부인하려고 하는 그런 노력들을 기울여왔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고요. 93년도에 고노담화에 이러저러한 문제는 있지만 그 자체, 고노담화의 그 자체의 문제를 뒤집지는 못했던 상황이 일본의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인식이 지금의 이러한 일본 정부도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가 있는 거고요. 이러한. . .

◇ 정관용> 그 점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뭐예요,그러니까. 일본도 서서히나마 이렇게 변화해 왔다. 그래서요?

◆ 남기정> 그래서 1965년도의 한계를 극복하는 게 0에서부터 없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죠. 그동안에 우리가 해 왔던 노력들이 있고 2010년도에 그러한 인식을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문서에 그 인식을 넣으면 된다라는 게 저희 생각인 겁니다. 그러니까 65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만드는데 그것이 새로운 조약을 맺거나 협정을 맺는 것이 아니고 기왕에 있어왔던 해석을 일치시키는 문제가 있는데 그 해석의 일치라고 하는 것에 어떤 준비단계는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이 해 왔다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 정관용> 그러니까 일본 정부를 향해서 당신네 2010년 간 나오토 담화에 따르면 식민지배의 강제성과 이런 걸 당신들이 인정한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하자는 거 아닙니까?

◆ 남기정> 한국과 일본이 교환하는 역사선언으로 채택을 하게 되면 65년 협정과 조약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고 그것을 재해석하는 의미를 갖다가 확인하는 거겠죠.

◇ 정관용> 일본 정부가 그걸 따를까요? 그런데 안 따를 수가 없다는 얘기군요. 2010년 딱 명문화된 것이 있으니.

◆ 남기정> 그렇죠. 그것을 발판 삼아서 일본에 계속 요구를 해야 된다라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지금의 위안부 문제라든지. . .

◇ 정관용> 일본이 그걸 받아들이면서 요구하면서 우리는 뭘 줄 수 있습니까?

◆ 남기정> 그렇게 되면 이제 일본이 지금까지 줄곧 그것을 거부해 왔던 이유는 사실은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한 가지는 조약의 불법성, 1910년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순간 거기에 대해서 배상책임이 발생을 합니다. 식민지 지배 배상책임이라는 것이 발생을 하게 되는데 일본이 배상을 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인정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그 이후에 어떤 의미에서는 사실상의 배상이라고 할 만한 일들을 일본이 아까 말씀드렸던 그러한 인식의 진정과 더불어서 해 왔던 것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재발방지를 위한 일본의 확약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받고 그거에 따른 일본의 책임이행을 배상이었다라고 하는 걸로 간주해 주는 것으로서 일본이 부담해야 할 그러한 책임을 우리가 경감시켜줄 수 있는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니까 이건. . .

◇ 정관용> 좀 간단히 줄여서 말하면 일본 정부 그동안 93년부터 2010년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통해 식민지배의 불법성, 강제성 인정하지 않았느냐. 그거 인정해라. 그럼 우리는 그것이 불법 강제 병합이었으나 그에 따른 배상이나 이런 요구는 이미 그 사이에 현대사 한일경제협력 등등으로 충분히 이루어졌으니 요구하지 않겠다.

◆ 남기정> 경제협력에 더해서 예컨대 2005년도에 우리 정부가 인식했던 건 청구권 협정 이외에 거기에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있다. 강제징용이라든지 이런 문제와 더해서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의 귀국 문제라든지 피폭자의 문제 등이 그 바깥에 있었던 것이었다라는 것을 인식을 표명을 했었고 이제 만일에 일본이 식민지배 책임을 전반적으로 인정하게 되면 이러한 것들의 책임을 인정을 해야 되겠죠.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 일본이 해 왔던 노력들이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컨대 2015년도의 위안부 합의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일본 정부로부터 받은 10억 엔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둘러싸고 그것이 위로금이나 뭐니 해서 법적인 배상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못 받겠다라고 하는 입장에 지금 처해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일에 일본이 이러한 인식을 표명을 해서 식민지 지배 책임 그 자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일본이 인정한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10억 엔이라고 하는 것은 일본의 법적 배상에 해당하는 그러한 성격을 띠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정관용>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

◆ 남기정> 해석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이제 그것을 우리가 정당하게 법적 배상으로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갖다가 풀어갈 가능성이 생긴다라고 하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대법원의 판결과 같이 개별적으로 피해본 분들이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해서 하는 이건 어떻게 되는 겁니까?

◆ 남기정> 이건 이거대로 사업적인 절차가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그런 사업적인 절차를 진행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 정부도 반영할 수가 없고요.

◇ 정관용> 다만 일본이 잘못을 인정한다면 정부 차원에서의 배상 요구라든지 이런 건 안 하겠다? 그냥 그런 정도의 재해석?

◆ 남기정> 그렇죠. 그래서 이건 한국 정부가 그동안에 일본에게 해 왔던 뭐랄까 로우키 외교를 수행하는 것이 될 텐데요. 그런 의미에서 예컨대 고노 외상이 작년도에 배상 판결이라고 하는 것이 국제법에 대한 도전이라든지 폭거라든지 그러한 얘기를 했을 때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문제를 제기를 하고 그것은 도대체 어떠한 인식에서 그러한 발언이 나오는 것인가라는 것을 문제를 제기해서 그것을 확인을 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아까 제가 말씀드린 1965년 조약 협정의 해석의 문제인 겁니다.

◇ 정관용> 아주 어찌 보면 획기적 제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제가 볼 때는 난관이 두 가지가 다 있어요. 먼저 일본 정부가 거기에 오케이 할지. 또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우리 정부의 이런 자세에 대해서 그만하면 됐다라고 할지 둘 다 어렵겠는데요.

◆ 남기정> 글쎄요. 양쪽이 어려운데 우리 정부는 그 양쪽에서 양쪽으로 용기를 발휘해야 된다고 봅니다. 역사적인 정의를 세우는 것 물론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요. 우리 정부의 의무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작업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국제법의 현실, 국제정치의 냉혹함 이러한 것을 전제로 해서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만일에 10이라고 하는 우리가 과제가 있다고 한다면 10의 과제를 우리가 바로 달성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중간단계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현실적으로 하겠다라고 하는 노력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정관용> 가만히 있어서는 점점 상황만 악화되니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를 향해서 또 우리 국민을 향해서 이중의 설득작업에 나서라 이 제안이시네요.

◆ 남기정> 그렇습니다.

◇ 정관용> 방송 나가고 우리 청취자분들의 평가도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남기정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남기정>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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